아이러니하게 악역이나 센 인상을 주는 연기를 할 수록 더 사랑 받고 시너지를 얻는 배우가 있다. '1987'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배우 김윤석. '타짜', '황해',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까지 악역임에도 불구 그의 연기는 항상 관객을 설득시킨다.
영화 ‘1987(감독 장준환)’은 6월 항쟁, 그리고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물고문을 당하다 결국 사망하게 되는 한 청년과 이를 숨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검은 세력들과 진실을 밝히기 위한 사람들의 투쟁이 이어진다.
이번에도 김윤석은 '1987'에서 박종철 죽음의 진실을 조작, 은폐,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박처장 역을 맡았다. 김윤석은 50년대 월남해서 30년 동안 서울에서 살아온 박처장의 전사까지 디테일하게 구현했다. 이북의 억양은 있되 오랜 서울 생활의 흔적을 말투에서 녹여냈다. 사실 김윤석의 북한 사투리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북한 사람에게 수업을 받고, 마우스 피스를 끼고 평안도 발음을 연습했다. 연음까지 신경썼다.
김윤석은 외형에도 변화를 줬다. 이마를 M자로 만들고 조금 더 거구의 박처장을 위해 연기할 때 패드를 착용했다.
만발의 준비를 마친 김윤석은 권력의 도구인 박처장으로 완벽한 연기를 보여줬다. 분노를 쉽게 드러내지 않고 절제된 톤으로 사람을 장악하는 모습은 그 시절 절대적인 권력을 짐작케 한다. "탁치니 억!"이란 말을 30년이 지난 후 자신이 하게 될 줄 몰랐다는 김윤석이지만, 누군가는 박처장 역을 해야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알기에 장준환 감독의 부름에 흔쾌히 응했다.
김윤석의 악역은 항상 사랑을 받아왔다. '타짜'에서 아귀로 분해 고니(조승우)와의 치열한 대결 끝 긴장감을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간담까지 서늘하게 만드는 무자비함으로 관객들의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김윤석은 '타짜' 이후 자신의 존재감을 충무로에 알리기 시작했으며 그가 비상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윤석의 두 번째 악역은 '황해'의 면정학이다. 택시 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김구남(하정우)에게 돈을 주고 살인을 지시하지만 자신은 더 많은 돈을 받고 김구남을 죽이려 한다. 족발뼈를 살인무기로 이용하는 잔악함은, 이전 작품보다 훨씬 수위가 높았다.
세 번째 악역은 영화 '1987' 장준환 감독과의 첫 만남인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의 석태. 이번의 악역은 이전과는 색깔이 확실히 달랐다. 석태는 화이(여진구)를 사람이 아닌 인간 병기로 키워나간다. 화이를 키우면서 그에게 부성애를 느끼지만 진실이 알려지면서 화이와 원수지간이 된다. 전작들에게 잔인함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에는 처절하고 처연함이 돋보였다. 화이에게 하는 행동은 무자비한 듯 보이지만 눈빛 만은 아버지의 그것이다.
김윤석은 '1987'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악역 인생에 획을 그을 것으로 보인다. 피가 튀기는 장면이나 액션은 없지만 그 어떤 악역보다 관객을 장악하는 힘은 비견될 곳이 없다. 악역임에도 불구, 뛰어난 연기력으로 '1987'은 개봉 전부터 '김윤석의 영화'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 김윤석은 이번에도 관객들의 응답을 얻을 수 있을까. 오는 27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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