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국립극단 제공)
[투비스 이재언 기자] 국립극단은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연극 단체다. 1950년 창단돼 지금까지 6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 연극의 계보를 이어온 국립극단은 2016년 지금까지 가장 유서 깊으면서 가장 현대적인 우리나라 연극의 ‘현재’를 보여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흔히 국립극단의 작품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국립극단이란 이름을 접하게 되면 ‘지루하고 현학적이지 않을까, 해박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선입견을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국립극단의 공연은 어떤 작품들보다도 흥미롭고 감각적이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황홀한 무대를 선보인다는 사실.
국립극단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분야로 나눠 소개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잘 알지 못하는 세계 고전 시리즈, 두 번째는 동시대를 절묘하게 포착해 사실적으로 담아낸 현대극이다.
고전극은 관객들에게 특히 도전하기 어려운 장르일 수 있다. 고전 도서가 그렇듯 고전극 역시 ‘마냥 덤비기엔 어렵고 재미없지 않을까’하는 편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립극단의 세계 고전 시리즈는 결코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선사하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전의 가장 큰 가치는 어느 시대에나 그 이야기의 의미가 통용된다는 점에 있다. 국립극단의 고전극은 고전에 담긴 깊이와 풍부한 성찰을 잃지 않음은 물론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재해석이 더해져 어떤 작품보다 감각적이고 ‘동시대성’을 갖춘 무대로 관객들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지난 2015년 국립극단 무대에 올랐던 ‘리어왕’은 이렇듯 흥미로운 고전극의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립극단의 ‘리어왕’은 무대의 시작에서부터 관객석을 압도한다. 살짝 기울어져 높이가 다르게 설정 된 무대 위, ‘리어왕’의 등장인물인 리어왕과 세 딸, 그들의 남편들은 각기 무대의 보이지 않는 각을 따라 유유히 자리를 잡는다. 배우들이 우리는 알 수 없는 자신들의 위치에 자리를 잡고나면 무대는 마치 한 편의 현대 설치 미술 같은 형상을 갖춘다.
이 외에도 ‘리어왕’에서는 무대가 분리됨과 동시에 천장에서 폭풍우 같은 비가 쏟아지는 등 첨단 기술력을 동원하며 더욱 풍부하고 완성도 있는 무대를 완성해낸다. 리어왕과 광대가 끝없는 혼란 속 그들의 정신 상태를 반영하듯 쏟아지는 폭풍우에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이 씬은 ‘리어왕’에서 가장 인상적이며 강렬한 장면이다. 또 ‘리어왕’은 단순히 무대 미술에만 치중하는 게 아닌, 극이 담고 있는 진중한 성찰과 철학을 함께 가지고감으로써 시각적, 정신적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진정한 세계 고전 시리즈 무대를 완성한다.
그렇다면 현대극은 어떨까. 국립극단의 현대극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포착해 무대 위로 올리는 데 주력한다. 다양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뇌에 무대에서만 재현 가능한 환상성이 더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현실과 비현실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작품은 ‘지금 우리’의 문제를 언급함과 동시에 재미를 놓치지 않으며 능숙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더불어 그 어떤 현대 예술 작품보다도 세련미가 두드러지는 국립극단 현대극 무대의 환상적인 미장센은 가장 스타일리시한 연극이 완성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빛의 제국’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지난 3월 국립극단 무대에 올랐다. 김영하의 원작 ‘빛의 제국’은 남북 분단의 현실과 이데올로기 문제를 개별적인 인간의 삶을 통해 다룬다는 점에서 21세기의 ‘광장’으로 불리는 작품. 국립극단은 이 연극 속 198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과거 그리고 현대의 인물과 사회 모습을 동시에 담아내기 위해 감각적인 빛의 활용으로 무채색 무대에 깊이를 더했다.
국립극단은 그 오랜 역사와 내공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며 계속해서 자신들의 층위를 넓혀가고 있다. 전통과 역사를 이어감과 동시에 누구보다 앞서나가는 국립극단의 성격이 고전의 뿌리를 단단히 부여잡고서 동시대성을 놓치지 않는 흥미로운 행보로 계속해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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