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윤의 무비레터]'비치온더비치' 홍상수 키즈 정가영을 응원해

2017-08-02 18:07



[투비스 류이나 기자]추운 겨울 날, 한 여자가 바쁜 걸음으로 아파트를 방문한다.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른 뒤 나오는 남자. 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보자마자 탄식과 같은 한 마디를 던진다.

"미쳤나봐 진짜!"

상황은 이렇다. 전 여친 가영이 전남친 정훈을 찾아가 "자자"고 끈질기게 구애하는 중이다. 가영은 정훈이 예쁘다고 말하는 친구의 치부를 하나의 에피소드로 포장해 폭로하기도 하고, 정훈의 여자친구에게 온 전화를 덜컥 받아버리기도 한다. 가영은 자신의 생각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저돌적인 여성이다. 지금까지 많은 미디어에서 다뤄지던 여성 캐릭터와는 확실히 다르다. 성별만 바꾼다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스토리다. 역시 정가영은 영화 속에서 홍상수의 천만을 기원한다는 대사로 그의 팬임을 드러낸다.

정훈은 포기하지 않고 들이대는 가영에게 말로는 펄쩍 뛰며 철벽을 치지만 행동은 애매모호하다. 가영이 침대에 눕자 옆에 따라 눕고 배고프다고 하면 라면도 끓여준다. 심지어 집에 오겠다는 여자친구를, 가영의 생떼에 못이기는 척 거짓말로 막는다.

영화의 묘미는 헤어진 남녀의 솔직한 대화다. 19금 대화도 서슴치 않는다. 가영은 "그러니까 니 여친보단 나인거지?"라는 말로 자신의 존재를 정훈에게 확인받고 싶어한다. 두 사람이 헤어진 이유나 전사에 대해서는 정확히 나오지 않았지만 "네 남성편력을 감당할 수 없어"라든가 "왜 나를 먼저 건드리지 않았던거야? 내 친구들이 남자친구 이야기 할 때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아?"라고 쏘아붙이는 대사들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두 사람이 이토록 솔직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서로가 서로의 최악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



가영은 모든 여자가 속으로 꿈꾸는'나쁜여자'의 한 단상이다.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평범한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욕구를 위해 거침없이 남자를 대하고, 마지막엔 쿨하게 가버리기까지 하다니. 처음에는 보기 불편할 수도 있지만 영화를 계속 보다보면 여주인공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적어도 자신을 속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마지막까지 가영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정훈은 목적을 달성한 후 말도 없이 떠나버린 가영에게 전화해 역으로 떼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밤이 되자 가영이 노래하는 동영상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여주인공 가영은,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정가영 감독은 디렉션 하는 수고와 연기하는 재미를 이유로 자신이 직접 영화에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정가영 감독의 유튜브 채널에 가면 그 동안 연출한 단편들이 게재돼 있다. 특히 '내가 어때섷ㅎㅎ'를 추천한다. 정가영 감독을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류이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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