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윤의 무비레터]'브이아이피'에는 뻔함이 없다

2017-08-23 19:21



느와르 영화를 떠올리자면 따라오는 흥행 공식이 있다. 조직폭력배들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싸움, 남자들의 단체 패거리 액션신, 또 남자들의 진한 의리가 뒷받침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걸 제외한 전혀 새로운 느와르 영화가 개봉했다. 박훈정 감독의 '브이아이피'. 그의 전작 '신세계'를 재미있게 본 관객들이 기대하고 본다면 안타깝지만 전혀 다른 지점에서 펼쳐지는 영화다. 차라리 '신세계' 보다는 그가 각본을 쓴 '악마를 보았다'에 조금 더 가깝다.

‘브이아이피’는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이를 은폐하려는 자, 반드시 잡으려는 자, 복수하려는 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네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영화.

이해관계를 국가 간의 대립으로 확장했다. 남북이 분리된 우리나라에서만 이야기 할 수 있는 유일한 소재다. 이 소재를 가지고 어느 정도 요리했느냐가 관건이다. 박훈정 감독은 장동건, 김명민, 이종석, 박희순의 캐릭터보다는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챕터가 나눠지는데, 그 챕터 별로 한 캐릭터가 돌아가면서 중심이 된다. 멀티캐스팅을 하고도 배우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건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 감독은 그 동안 나오지 않았던 진짜 새로운 느와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보고 싶은영화가 우선시 돼야 관객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브이아이피'는 서늘하고 찬바람이 분다. 배우들의 케미스트리도 없다. 국정원 박재혁(장동건), 형사 채이도(김명민), 연쇄살인마이자 북에서 온 VIP 김광일(이종석), 북학공작원 리대범(박희순) 모두 각각의 욕망과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누구와도 손 잡지 않고 그저 앞으로 향해 나갈 뿐이다.

즉 감정과잉이 없다.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똘똘 뭉치는 관계들이 없기에 감정 소비가 없다.

과감하게 이 공식을 삭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에서 기인한다. 각자 다른 매력으로 스크린을 채우는 네 명의 배우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특히 이종석의 연기 변신이 괄목할만한 성적을 보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춘의 얼굴을 대변했던 이종석. 소년의 얼굴 뒤 잔악무도함을 즐기는 김광일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자신의 강점을 살려 그것을 정반대의 이미지 이끌어내는 연기를 했다. 워낙 캐릭터가 강렬한 탓에 '브이아이피' 김광일이 이종석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악역이 되겠지만, 아쉬움이 남진 않을 것이다. 이종석은 자신의 인생 캐릭터를 기대하고 '브이아이피' 박훈정 감독에게 연락을 했고, 그의 기대는 맞아떨어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낯설지만 새로운 느와르 '브이아이피'. '신세계'와 정반대의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 느와르의 저변 확장에 성공했다. 관객들에게 똑같이 찍어낸 장르 벗어난 영화를 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박훈정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편집자 주 류이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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