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윤의 무비레터]'남한산성'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2017-09-28 06:34



영화 '남한산성'을 통해 인조 14년 병자호란,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47일간의 이야기가 스크린으로 탄생했다.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으로 제작단계서부터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조우진 등 쟁쟁한 배우들의 라인업에 화제를 모았다.

인조 14년, 청의 대군이 공격하자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 들고, 남한산성 밖은 청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황. 화친을 해 치욕을 견디고 백성을 돌봐야 한다는 최명길과, 청에게 끝까지 맞서야 한다는 김상헌의 대립을 이루고 인조는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뇌만 깊어간다.

두 사람은 양 극단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 같지만 목표는 하나다. '나라를 지키는 것' 최명길과 김상헌은 나라를 위하고자 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조정에서 서로의 의견에 반기를 들며 주장을 펼치지만, 옳은 이야기를 하면 힘을 더해주기도 한다. 두 사람은 신념이 다른 파트너다.

병자호란 12월, 추위와 고통 속에서 백성들은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앞세워진다. 이들은 군인이 아닌 그저 끼니를 챙겨먹고 가족들과 따뜻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식량은 떨어져가고 바람은 더욱 차가워진다. 여기에 청의 압박도 날로 거세진다. 청은 조선을 조롱하며 신하가 될 것을 요구한다.

역사를 통해 '남한산성'의 결말은 모두가 알테지만,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조금 더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이병헌과 김윤석의 날카로운 대립은 극의 관전포인트. 긴장감이 넘치지만 보는 관객들은 '연기열전'에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역적으로 몰리면서까지 최명길이 왜 화친을 주장했는지, 김상헌은 기울어지는 싸움임에도 불구 왜 척화를 외치는지 울림을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조정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자신의 방법을 인조에게 관철시키는데 그들의 대사는 허투루 하는 말이 없을 정도로 철학적이고 시대를 관통한다.

인조를 연기한 박해일은 바람 앞에 등불이 된 조선의 모습을 자신의 얼굴에 담아냈다. 인조는 역사 속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왕이다. 청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 하지 못해 치욕을 당하고 소현세자의 비극까지, 인조의 무능함과 비정함이 부각돼 왔다. '남한산성'에서는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인조만의 고뇌를 유약한 얼굴로 스크린에 채웠다.

의외의 발견은 고수의 활약이다. 대장장이 석날쇠 역을 맡아 김상헌으로부터 격서 운반의 중책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임금이나 나라를 위해서라는 거창한 이유가 아닌, 자신으로 인해 이 전쟁이 하루 빨리 끝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서 받아들인다. 잘생긴 얼굴은 수염과 정리 되지 않은 머리로 가려지지만 연기력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추운 겨울 오픈세트에서 촬영을 진행, 배우들이 추위에 시달렸을 것이 눈에 고스란히 보인다. 고생했기에 담을 수 있었던 현실적인 추위와 풍경은 큰 수확이다. 정적인 분위기의 조정을 격투신이 환기시켜주는데, 황동혁 감독이 격투신에 심혈은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황동혁 감독은 38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지만, 현재를 관통하고 있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논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길 바란다며 '남한산성'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황동혁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극장가 대목 추석, '남한산성'이 380년 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치욕의 역사 뒤의 모습을 전한다. 오는 10월 3일 개봉. 러닝타임 139분. 15세 관람가.

[편집:류이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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